"옥수가 굽이치는 비탈길을 걸으며 구름 자는 영도 넘고 바위 밑에서 소낙비도 겪어 보고 밭고랑에 풀을 깔고 누워 하늘에 초롱별들과 동화 같은 꿈도 꾸어 보겠습니다. 백 리도 내 다리로 천 리도 내 힘으로 걸어 영 많은 관북 일대부터 한여름에 정복해 놓겠습니다." - '도보 삼천리' 이태준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 국토종주
걷기는 만물을 볼 수 있는 시속 2~5km의 속도로 이뤄진다. 걸어야 비로소 만물이 보이고, 보아야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다. 국토순례와 산수유람에 대한 이 같은 태도는 옛 선조들도 똑같았다. 우리 선조들은 주마간산 식의 여행을 극도로 꺼렸다. 걷기를 '배움'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 길을 여행한다"는 말이 통용됐을 만큼 산수유람은 격물치지 공부의 현장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철저히 정보 수집과 역사 고증을 했고 기록으로 남겼다. 현재 남아있는 유산기만 600여 편에 이를 정도다.
나에게 주는 인생 선물 도보 국토종주
찻길도 아니고 산길도 아닌 그 중간의 길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우리 땅의 실체를 밝혀가기 위해 사람길로 걷기 위한 도전의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우리 국토의 보석 같은 속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고, 그